230224
먼지가 눈발인지, 눈발이 먼지인지
그렇게 흩어지는 겨울과 열아홉
Canon A-1
FD 50mm 1.4, Kodak Tri-x 400

卒業,
下
고이 접어드립니다
유난히 짓궂던 여름을 견디어내자
다시 겨울은 돌아오고
이제는 정말로 온마음을 다해
네 따뜻한 겨울을 축하하고, 응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못 다 전한 축하와 응원과 고마움을 눌러 담아
고이
배경눈, 2023









실은 먼지를 대강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송이들이라 치부해도
알 길은 없지만(?)
눈은 눈대로 지키고, 먼지는 잠시 가리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대체적으로 화이트 톤이 강하게 살지 않은 점은
촬영 당시의 노출, 현상 시의 시간 조절 문제 같긴 한데
인화에서는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조회대에서의 사진들
자세히 보면 우리가 이날 썼던 우산들이 모두 다르다
어느 것은 투명 우산(여름처럼)
어느 것은 무지개색 우산(무지개인지 그저 줄무늬인지 모호하지만)
운동장에는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가득했는데
혹여나 소복이 내린 눈의 모양새를 해칠까봐 노심초사하며 고민한 걸음이
눈에 잘 보인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각자의 일상을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조금씩 운동장으로 모였는데
그 중 눈 내리는 날 축구를 하겠다며 모인 초등학생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눈쌓인 인조 잔디 바닥 위를 뛰다가
눈사람을 만들다가
다시 눈싸움을 하다가.
추운 줄도 모르던 사람들
우리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이 날 운동장에는 몇개의 눈사람이 더 있었는데
어느 가족은 눈사람 제작을 위한 각종 장비까지 챙겨왔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축구하는 아이들과 눈사람 만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조금 뒤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는데
조회대를 지나서자마자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던 웬 눈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새가슴은 별게 다 놀랍다
그런데 그 눈사람...
잠시 한눈 팔다 다시 바라보니
곧 달려나갈 듯 몸이 앞으로 기울고 있었다...
오리 꽁지 같은 것이 달린 몸 위로,
정확히는 머리가 땅으로 향하고 있던 것이다
경악하고 있던 와중
앳된 목소리가 우리를 불러세웠다
언니들~ 이거 우리가 만든건데
언니들이 지켜줘요
눈사람을 만드느랴 볼이 새빨개진 어린 아이가
저먼치에 있는 차에서 달려와
귀여운 당부의 말을 남기곤
다시 잽싸게 뛰어 가족들에게 향했다
혹여나 우리가 눈사람을 망가뜨리기라도 할까
걱정이 됐던 것인지...
(눈사람 부수는 것은 금기된 일이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이가 차로 다시 달려가기까지
과연 눈사람이 버틸 수 있을까 싶더라
그렇다고 머리를 받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이의 새빨간 볼과 똑부러지는 말솜씨에
귀여움과 대견함을 느끼기도 잠시
차는 떠났고
곧 눈사람 머리는 바닥에 쿵 하고 떨어져버렸다
아이가 그것을 보진 못해 다행이긴 했다만
무튼
눈을 즐기는 각자의 방법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우리가 꽤나 수상한 사람처럼 운동장과 학교를 서성이며
사진을 찍고, 눈을 맞았듯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저 노랭이(노란 아니고 노랭이어야 함) 캠코더에
나도 많이 출연했었는데...
겨울 노부부짤 탄생한 강릉 여행부터
증발해버렸거나 땅으로 꺼졌을 듯한 타임캡슐 묻던 날,
감성 유튜버라도 된 마냥
집에서 노가리까며 맥주 마시던 날까지
어느날 우연히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한 사람처럼
쪼그려 앉아 가만히~ 영상들을 돌려보고 싶다
그 생경함을 느끼려면 나이를 더 먹어야겠지
그나저나... 편집본도 보고싶다 율아....
ㅋ
하교, 2023












이른바 '눈으로 욕하기' 사진으로 불리우는 컷...
암실에서 인화하기 이전에도 가장 기대되는 한 컷이긴 했는데
현상액에 담그고 뒤집었을 때는 기뻐서 소리 지를 뻔
소리는 안 질렀지만 무튼
인화 버전에서 특히나 암부 디테일이나 대비감이 잘 살았다
2호 필터를 사용했으며 스킨은 총 10초
어두운 톤의 교복은 총 10초 이내로 닷징해 작업해주었다
빈 교실에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혹은 그저 두고간 졸업생들의 짐이 남아 있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정작 나는 졸업할 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긴 한디...

이 컷은 스트레이트 인화에서 창 밖 디테일이 무에 가까웠어서
배경 부분만 따로 버닝해 인화해주었다
문제는 노광 시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감으로 인화한 사진이 참..
많네....
..






오랜만에 여름 졸업 사진을 다시 보니 느낀 것인데 그새 머리가 많이 자랐다!
나는 그 사이 자르기도 하고 기르기도 하고.... 머 암튼
무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함께 해줘서 고마운 마음
이제 진짜 둘 다 졸업했다!
그런데... 올해를 보내며 우리는 어디로부터 졸업할 수 있는건지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꾹 참았던 마음으로부터?
잘 모르겠다. 앞으로 차차 고민해나가보자
아니다 고민하지 말자!
검은 토끼의 해이긴 하다만, 하얀 토끼도 행복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2023년도 뭐가 되었든 항상 그래왔던 대로 잘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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